요즘 직장인은 발빠르게 행동한다. 특히 30대 직장인의 처세술은 다른 연령대보다 훨씬 기민하고 역동적이다. 그 이전세대보다 눈치를 별로 보지 않는다. 직장생활도 이게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결단한다. 살벌한 기업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짓이다. 이런 세태로 요즘 직장인의 꿈이 ‘지긋지긋한’ 직장을 뛰쳐나가 홀로서기를 하는 것이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결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전문성과 ‘끼’, 능력을 믿는다면 결행 후에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가 있다.
30대인 박정길(38)·양내윤(35)·박종하(36)씨, 세 사람은 모두 대학을 마치고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자신감 하나만으로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1인기업가의 길을 걷고 있다. 박정길씨는 몇 년 간의 홀로서기 과정을 거쳐 자기계발 전문프로그램인 NLP트레이너로서 NLP전략연구소장으로 있고, 양내윤씨는 웃음을 경영에 접목한 유머경영 전도사로서 유머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KAIST 박사인 박종하씨는 창의력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산업교육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1인기업가가 직장이나 현장에서 충분할 정도의 전문성을 쌓은 후에 홀로서기를 결행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새출발한 것이 아니다.
NLP 트레이너 박정길 대표
동아대(정외과)를 졸업한 박 대표는 과 동기 중 유일하게 대기업인 삼성에 입사해 서울로 진출했다고 한다. 1995년 삼성중공업 홍보팀에서 근무하게 된 박 대표는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시간이 갈수록 대기업이라는 직장에 회의가 들었다. 꿈도 잃어가고 직장일도 시들해졌다. 부산에서 서울에 올 때에는 꿈을 갖고 왔는데 자신은 점점 조직 속의 작은 부품이 되어 갔다.
1999년 초 한국리더십센터에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자기계발 강사인 스티븐 코비의 내한에 맞춰 이를 홍보할 수 있는 홍보전문가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당시 리더십센터는 알려진 조직이 아니어서 삼성에서 옮기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별안간 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주저없이 사표를 냈다.
삼성맨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일하게 되자 부친은 그로부터 2년 동안 말도 건네지 않았다고 한다. 리더십센터로 옮긴 박 대표는 신들린 사람처럼 일했다. 스티븐 코비의 방한 이벤트를 만들고 대통령 면담을 주선하면서 새로운 기운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성공하는 10대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교육프로그램을 개발·운영했고, 프랭클린 플래너 수첩을 국내에 도입해 마케팅을 전담하기도 했다. 모두 성공적이었다.
박 대표는 자기계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이 분야가 앞으로 유망한 시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리더십센터에서 나와 뜻이 맞는 이들과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심지어 8개월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하면서도 일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웠다. 2001년에는 ‘변화를 이끄는 사람들’이라는 회사를 공동으로 만들어 운영하면서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앤서니 라빈스 지음) 프로그램을 국내에 보급시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때 변화를 유발하는 ‘NLP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2002년 아예 미국 산타크루즈 대학에서 운영하는 전문가과정에 들어가 NLP트레이너 자격증을 땄다. 마침내 2005년 6월 NLP전략연구소를 세우고 1인기업가로 나섰다. 최근에는 역서인 ‘긍정적인 말의 힘’과 ‘프로세일즈의 길’ 등을 내면서 자기계발 저자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 존 그레이를 초청해 강연회 등을 열었다.
박 대표는 대기업 홍보맨으로 출발해 자기계발 프로그램의 마케터를 거쳐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마침내 자기계발 트레이너로 연착륙하는 데 성공한 케이스다. 박 대표는 처음부터 ‘준비된 1인기업가’가 아니다. 대기업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이 오히려 무기력함을 안겨주자 둥지를 뛰쳐나와 외로운 길을 걸었다. 그렇지만 신바람나는 일, 비전 있는 미래에 자신을 걸었고 지금은 자신의 세대보다 한 발 앞서 꿈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의 꿈은 1인기업가에 머물지 않고 세계적인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전문회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박정길의 성공변신 노하우 5계명 ▲ 대기업이라는 틀에 안주하지 말라 ▲ 자신만의 전문성을 향해 도전하라 ▲ 지속적으로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라 ▲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라 ▲ NLP와 같은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라 |
유머경영연구소 양내윤 소장
대학졸업 후 효성에 입사한 그는 아파트 공사현장에 배치됐다. 대학 때부터 신입생 환영회의 단골 사회자였던 그는 효성 신입사원 400여 명의 동기생 앞에서도 흥을 돋워주는 역할을 자청했다. 연수 때 딱딱한 분위기는 그가 앞에 나서면 눈 녹듯이 사라졌다. 회사는 행사 때면 그를 불러 MC를 맡겼다. 그는 공사현장에서도 동료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그가 속해 있는 작업반은 다른 작업반보다 아파트 층수를 1~2개층을 더 올렸다. 공사가 끝나면 현장소장은 작업 능률을 올려주는 그를 데려가려고 했다. 이때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에 제격임을 깨달았다. 대학 때부터 각종 행사의 진행을 맡기도 했지만 자신의 ‘끼’가 이 정도인 줄 미처 몰랐다.
목표가 정해지자 서둘러 결행했다. 입사한 지 3년8개월 후 그는 효성을 나와 자신만의 길을 찾는 일에 착수했다. 처음 그가 들어간 곳은 SBS방송아카데미의 아나운서MC과정이다. MC라는 직업이 대중적으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부모님을 설득해 1년만 지켜봐달라고 했다.
양 소장이 결심을 굳힌 것은 자기계발 책을 통해서였다. 그는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을 보고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잘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하고 여기서 나아가 ▲꼭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는 말을 가슴속에 새겼다. 자신도 잘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에서 더 나아가 자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그런 일을 해보고 싶었다.
양 소장은 이때 자신에게 남을 즐겁게 해주는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웃음을 경영에 접목해 기업생산성을 올려주는 일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웃음이 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웃음강연이 단지 일회성 강연으로 끝나면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면서 “웃음경영이 기업의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임직원이나 고객이 조직이나 시스템 그 자체에서 웃게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스웨스트항공이 저가항공으로 성공할 수 있던 것은 가격파괴에도 원인이 있지만 여행객이 즐겁게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는 기내의 ‘펀(fun) 시스템’도 한몫 했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기업은 인재를 모셔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재를 다른 기업으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사 분위기를 즐겁게 일할 수 있게 만드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기업 만들기의 3요소로 신뢰(trust)와 자긍심(pride)에 더하여 즐거움(fun)을 든다.
양 소장의 미래 꿈 역시 당차다. 그는 국내의 펀(fun)경영 전도사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전도사를 꿈꾼다. 그는 이미 싱가포르에 사무실을 하나 마련했다. 동남아를 거쳐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게 그의 야심찬 목표다. 그리고 웃음경영을 체계화하기 위해 그는 석사학위를 이수한 데 이어 박사학위과정도 밟을 예정이다.
양내윤의 성공변신 노하우 5계명 ▲ 자신만의 잠재력을 일깨워라 ▲ 끼를 적극적으로 내세워라 ▲ 전문교육 과정과 학위과정을 이수하라 ▲ 책을 읽고 틈새영역과 비법을 찾아라 ▲ ‘웃음경영’처럼 시스템에 접목하라 |
창의력 컨설턴트 박종하 박사
고려대를 거쳐 KAIS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에게 대학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기업에 입사하기로 결정하고 자연스럽게 대졸자들의 입사 1순위로 꼽히는 삼성전자에 입사하며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가 입사한 때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외환위기가 휘몰아친 1997년이다. 회사의 분위기는 그가 당초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회사는 직장이라는 따스함보다 냉기가 감돌았다. 사회적인 분위기는 더 살벌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직장인이 쫓겨났다. ‘조직은 더 이상 너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보이지 않는 현수막이 도처에 내걸렸다.
그는 기업이 인재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막사 와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는 조직이 더 이상 많은 인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기업상황이 일회적인 게 아니라 장기화된다면 회사원의 미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박사학위를 가진 ‘순진한’ 사회 초년생에게 외환위기라는 악재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한 것이다. 그는 삼성전자가 대기업으로서 안정감과 미래를 기약해줄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났다.
1999년 그는 삼성전자에 사표를 내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당시 한창 유행한 벤처를 창업했다. 모든 게 그렇듯이 만만한 게 없었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합병을 통해 대표이사직을 내놓았다. 이때 그에게 ‘창의력 컨설턴트’라는 새로운 세계가 다가왔다. 에드워드 드 보노의 ‘수평적 사고’를 읽고 기업에서 창의력을 증진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임을 깨달았다. 그는 창의력이 기업의 사활에 중요하다면 당연히 수요와 시장성이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일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마음이 있어서인지 길은 쉽게 열렸다. PSI컨설팅이라는 회사와 연결돼 창의력 컨설턴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인기업가에게는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전문조직을 파트너십으로 활용할 경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는 2003년에 ‘생각이 나를 바꾼다’라는 책을 내면서 기발한 생각과 유쾌한 상상력으로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방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7권의 책과 칼럼을 쓰고 기업에서 강의를 하면서 그는 창의력 컨설턴트라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더욱이 글로벌 경쟁시대가 되면서 무형의 가치를 자산이 있는 유형의 가치로 바꾸는 창의력 컨설턴트의 역할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박종하의 성공변신 노하우 5계명 ▲ 박사학위를 내세우거나 그 영역에 연연하지 말라 ▲ 미래의 수요와 시장을 고려하라 ▲ 전문조직을 파트너십 관계로 활용하라 ▲ 반드시 책을 펴내 전문성을 인정받아라 ▲ ‘창의력 컨설턴트’처럼 한 발 앞서 자신만의 명함을 만들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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