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19일 목요일

공기업, 2명 나가야 1명 채용한다

<공기업, 2명 나가야 1명 채용한다>

취업 준비생에게 인기가 높은 공공기관의 올해 정규직 채용이 사실상 실종된 것은 공기업 정원을 감축해야 하는 속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19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가 최근 공기업 선진화의 일환으로 2012년까지 '10% 이상의 인원 감축'을 지시한 상태라 공기업 입장에서는 정규직 신규 채용은 고사하고 자체 인력 감축도 손을 대지 못한채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공기업의 경우 정원 축소 계획을 이행하면서 신규 채용을 하려면 1명을 채용할 때마다 기존 직원 2명을 내보내야 하는 처지라 아예 신규 채용 계획 자체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즉 공기업에 다니는 아버지 세대 2명이 희망퇴직 또는 명예퇴직을 해야만 아들 세대 1명이 입사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공기업 인기 여전..연간 채용계획도 못잡아

'신이 내린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에 대한 인기는 최근 극심한 경기 침체 속에서 더욱 인기다. 이제는 '공기업 고시'라는 말이 취업시장에 나돌 정도로 입사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1월 한국전기공사가 올해 정부 산하 공기업 중 처음으로 실시한 대졸 신입사원 공채에는 72명 모집에 1만502명이 지원해 평균 14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한국전기공사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며 올해 경기 침체와 공기업 선진화에 따른 자체 인력 감축의 영향으로 올해 채용 계획을 확정한 공기업은 거의 없다.

금융 공기업 가운데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주택금융공사 등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정규직을 뽑지 않는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하반기 109명을 채용했지만 올해는 민영화 문제 등으로 전혀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으며, 한국전력은 작년 상반기 184명을 채용했지만 올해는 현재까지 상반기 채용 계획이 없다.

지난해 111명을 채용한 석유공사도 올해는 계획을 못 잡고 있으며 한국공항공사와 한국토지공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규채용이 힘들 전망이다.

이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공기업들은 3월 중순이 지났음에도 재정부에 아직 연간 채용 계획을 제출하지 못한 상태다.

재정부 관계자는 "공기업에 연간 채용 계획을 제출하라고 지시했지만 아직 별다른 진척이 없다"면서 "신규 채용을 하려면 구조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채용 계획을 짜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기존 직원 잘라야 신입 뽑는다

공기업들은 정부가 총 정원은 감축하라고 지시해놓고 신규 채용을 늘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요즘과 같은 경기 침체에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직원도 거의 없어 자체 인력 감축도 목표 달성이 힘든 상황인데, 신규 인력까지 뽑으라는 것은 '우는 아이에게 뺨 한대 더 때리는 격'이라는 주장이다.

대부분의 공기업들은 노조와의 갈등을 빚으면서까지 기존 직원을 정리하는 것보다 신입 채용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희망퇴직이나 자연 감소분으로 정원 감축이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한국가스공사의 경우 설립된지 25년밖에 되지 않아 2012년까지 자연감소 인원이 50명에도 미치지 못하며 목표치를 맞추려면 400명 이상을 강제 퇴출해야 할 형편이다. 이 상황에서 신규 채용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셈이다.

한국전력 또한 자연감소 인원(600~700명)으로 향후 3~4년간 정원의 10%가량인 2천명의 인력을 줄일 계획이라 신규 인력 채용은 힘든 상황이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정부의 지시는 공기업에 다니는 아버지 세대 2명을 길거리로 내몰고 그 자리에 대졸 구직자인 아들 세대 1명을 넣으라는 것"이라면서 "과연 어떤 게 집안의 생계 안정에 도움이 되는지 정부는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공기업 인사담당자는 "신입 직원 채용은 예산보다 정원이 더 큰 문제로 작용한다"면서 "정원이 감축된 상황에서 신입을 뽑으면 결국 퇴출해야 할 직원만 늘어나는 셈"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에 따라 일부 공기업에서는 인턴사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정원에서 예외로 인정해주는 등 정원 감축에 대해 정부의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 또한 이같은 고충에 대해 수긍을 하면서도 정원 축소를 통한 경영 효율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평균적으로 볼 때 공기업이 1명 채용하려면 기존 직원 2명 정도를 잘라야 할 것으로 보여 공기업들이 쉽게 채용을 못하는 것 같다"면서 "이 때문에 공기업이 연간 채용 계획을 확정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어 정부에서는 2012년까지 형편에 맞게 운영하며 목표를 달성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올해 정부 정책의 큰 목표가 일자리 창출이기 때문에 공기업을 독촉해 신규 채용을 확대하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