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푸 철수로 살펴본 유통 노동자들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① | |||||||||||||||||||||||||||||||||
까르푸, 왜 한국 떠나나? | |||||||||||||||||||||||||||||||||
“한국 소비자 정서 외면…다점포망 구축 실패 ‘결정적 패인’” | |||||||||||||||||||||||||||||||||
소매유통업계 세계 1,2위를 다투는 까르푸와 월마트가 잇달아 한국시장 철수를 선언했다. 1996년 유통시장이 전면 개방된 이후 공격적으로 한국 진출에 나섰던 이들 기업이 유사한 시점에 한국 철수를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 기업이 떠나면, 남겨진 노동자들은 어떠한 현실에 직면할까. <매일노동뉴스>가 4회에 걸쳐 까르푸 철수를 통해 본 ‘유통노동자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해 본다. 연재순서는 다음과 같다.<편집자 주>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까르푸(Carrefour)’에 대해 알아보자. 까르푸가 우리나라에 상륙한 지 올해로 10년째이지만, 우리는 까르푸에 대해 너무 모른다. 실제로 까르푸에 드나들며 식료품 등을 사재기해 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근데, 까르푸가 무슨 뜻이람?’. 까르푸는 프랑스 말로 ‘교차로’라는 뜻이다. 길과 길이 만나는 그곳에 서 있는 위풍당당한 ‘까르푸’. ‘이마트’나 ‘월마트’같은 노골적인 상점 이름에 비춰볼 때, 참 멋진 이름이 아닐 수 없다. 1963년, 상점 부지가 프랑스 파리 근교 어느 다섯 개의 길이 만나는 교차로에 위치한 것에 착안해 ‘까르푸’라는 운치 있는 이름을 지은 사람은, 의류소매업을 하던 포니에르(Fournier) 일가와 와인 및 식료품 도매업을 하던 디포레이(Defforey) 일가다. 이 두 집안이 의기투합해 만든 슈퍼마켓이 당시 혁신적 선풍을 일으키며 프랑스 국민들의 사랑을 받게 됐고, 프랑스 언론들은 슈퍼마켓과 할인판매점, 창고소매업의 장점만이 결합돼 만들어진 새로운 유통업태에 이례적으로 ‘하이퍼마켓’이라는 영어 이름을 붙였다. 프랑스 내 성공에 힘입어 승승장구한 까르푸는 1973년 스페인 진출을 필두로 세계시장 공략에 나섰고, 전세계 32개국에 11,000여개의 매장을 보유한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렇듯 파죽지세로 사세를 확장해 온 까르푸가 한국시장 진출을 타진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까르푸그룹은 한국 정부의 유통업 부문 외국인 투자 개방화 정책에 힘입어 1993년 12월29일 재무부로부터 6,000만달러(당시환율로 한화 약 480억원)의 투자인가를 받아, 한국 유통시장 완전 개방화 원년인 1996년 7월 국내 하이퍼마켓 1호점인 까르푸 중동점(부천)을 개점하기에 이른다. 이는 세계 1위 유통업체인 월마트가 1998년 8월 한국의 마크로를 인수하며 한국시장에 뛰어든 것보다 2년이나 앞선 것으로, 할인점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입지선점에 있어 일정정도 우위를 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세계2위 유통업체의 초라한 성적표 그러나 까르푸는 한국시장에서 초라할 정도로 낮은 성과를 냈다. 빠른 진출, 자본력, 다양한 해외시장 경험까지 두루 갖춘 까르푸가 유독 한국에서 맥을 못 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다음은 LG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까르푸 철수가 남긴 교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 내용의 일부다. “영업이익률 1.48%, 매출 1조6,680억원, 시장점유율 8%, 업계4위. 세계2위 소매유통업체 까르푸가 한국 시장에서 보여준 2005년 성적표다. 국내시장 1위인 이마트가 영업이익률 8%, 매출 6조6,130억원, 시장점유율 34.5%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까르푸의 실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효율성 측면에서도 이마트가 매장당 840억원, 홈플러스가 850억원, 롯데마트가 68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데 반해, 한국까르푸는 총32개 매장에서 매장당 52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쳤다.” LG경제연구원은 이 보고서에서 한국까르푸가 실패한 이유로 △현지화 노력 미흡 △현지파트너와의 마찰 △사회적 책임의식 부족 등을 꼽았다. 이같은 진단은 유통업계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이기도 하다. 또, 10년간 한국까르푸를 지켜 온 직원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유통학회가 펴낸 <2006 유통총람>에 따르면, 시장 진입 초기에 국내 할인점 시장에서 외국계 할인점이 범하는 실수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국내 소비자들의 구매스타일을 반영하지 못했고, 국내 직원들의 고용이 미진했다는 것. 둘째는 입지 측면에서 비용을 낮추기 위해 도심 외곽에 출점했으나 우리나라 고객 특성 상 입지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유럽식 눈높이, ‘고집불통’ 경영방식 앞서 말했듯 까르푸는 세계2위 유통업체다. 때문에 고유의 경영 노하우를 갖추고 있으며, 자신들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자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점이 문제였다. 까르푸는 매장을 구성할 때, 유럽인들의 키높이에 맞는 2.2미터 높이의 매장 진열대를 고수했다. 물건을 높이 쌓으면 각 상품에 대한 선전 효과가 높아진다는 이점이 있지만, 한국의 주고객층인 주부들의 키를 고려했다면 1.5미터 안팎의 높이로 매장을 구성했어야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물론 까르푸의 ‘높이 쌓기’ 전략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까르푸는 상품을 높게 쌓는 대신 상품과 상품 사이의 통로를 넓혀 고객들이 진열대 사이를 쉽게 오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하지만 까치발을 들어도 상품이 손에 닿지 않는 ‘높이 쌓기’ 방식은 고객들의 발길을 이마트로 돌려놓았다. 제품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도 까르푸는 한국 고객들의 취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대개의 대형유통점은 매장 초입에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집중적으로 배치한다. 한국 고객들의 경우 대형할인점에서 신선식품을 구매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까르푸는 유럽 소비자 구매 패턴에 적합한 공산품 위주의 제품구성 방식을 적용했다. 실제, 이마트의 신선식품 비중이 40%인 데 반해 까르푸는 30% 수준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까르푸는 신선식품의 구성에 있어서도 ‘글로벌 스탠더드’, 정확하게는 유럽인의 시각을 고집했다. 까르푸 신선식품부에 근무해온 한 직원의 말을 들어보자. “까르푸는 한국진출 초기 말단 매니저까지 프랑스 현지인들로 채웠습니다. 때문에 한국인 직원들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곤 했는데요. 일례로, 한국인 직원이 토마토를 과일 매대에 진열하면, ‘왜 야채를 과일매장에 배치하느냐, 당장 야채 매대로 옮기라’는 주문이 떨어지곤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토마토를 과일처럼 먹는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소용없었어요. 그런가 하면 프랑스 관리인들은 한 박스에 20만원이 넘는 수입 체리로 과일매장을 도배하다시피 하기도 했습니다. 그 비싼 걸 누가 그리 많이 먹는다고…. 한마디로 유럽식 경영방식을 무조건적으로 주입하려는 게 문제였죠.”
의사소통 안 되고, 인재양성 안 하고 프랑스 본사에서 파견된 관리직들과 한국인 직원들 간 의사소통 문제도 심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까르푸는 한국 진출 초기 한국인 관리직 채용을 꺼렸다. 때문에 프랑스인과 한국인 사이의 대화는 모두 영어로 진행됐다. 회의도 영어로 하고, 보고서도 영어로 작성해야 하는 상황. “수백가지에 달하는 식품 종류, 학술 용어 등등을 달달 외워야 했습니다. 회의도 영어로 하는데, 프랑스식 영어발음을 알아듣기도 힘들고…. 한국직원 대부분은 그저 ‘예스’, ‘예스’만 반복하고 앉아 있었죠.”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효율성의 저하로 이어지기 일쑤. “가령 야채매장에서 양배추가 품절됐다고 하면, 신선식품부 매니저가 ‘왜 품절됐는지’를 분석해서 보고서로 작성해야 합니다. 이때부터 갑갑해지는 거죠. 보고서 한장 쓰는데 하루 종일 걸리고….” 설상가상으로 까르푸는 ‘바이어’로 대표되는 유통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데에도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대졸자들이 공채로 들어오면, 영어를 잘하는 사람부터 고속 승진을 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유통업에 대한 전문성은 매우 떨어지지만, 회사에 대한 충성도는 매우 높기 마련이죠. 까르푸에서 노조와 매니저 간 마찰이 잦았던 배경에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까르푸노조 김경욱 위원장의 지적이다. 김 위원장은 “까르푸는 유통업체의 핵심역량인 바이어를 양성하는 대신, 타 업체에서 스카우트 해오는 데 의존했다”며 “이는 타 업체에 10~20년 된 전문인력이 포진해 있는 것과 단적으로 비교되는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까르푸의 또다른 실패 원인으로 ‘파트너 관리 문제’를 꼽는다. 한국까르푸가 납품업체 관리에 있어 적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지적. 실제 까르푸는 납품업체와 마찰이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출 부진의 책임을 납품업체에게 전가하거나, 매입 단가 인하로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까르푸는 납품업체들에게 수시로 공짜상품 납품을 강요, 이를 되팔아 해마다 수십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밝혀져 비난을 사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얻은 부당이익이 2004년에는 55억원, 2005년에는 6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까르푸의 지난해 당기순이익 68억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까르푸는 또, 크고 작은 노사갈등이 끊이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혹자는 “프랑스엔 똘레랑스가 있는지 몰라도, 까르푸에는 똘레랑스가 없었다”고 꼬집기도 했다.<상자기사1 참조>
입지 선점 밀리면서, 사세 확장 주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까르푸가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입지 선점 경쟁에 뒤쳐진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까르푸는 한국진출 초기 시장 선점을 위한 공격적 경영을 추구했다. 실제 초창기 오픈한 부천 중동점, 일산점, 대전 둔산점, 인천 계산점 등 4개 매장은 32개국 11,000여개 까르푸 매장 중 매출순위로 10위 안에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까르푸의 매장 확대는 2001년부터 주춤해졌다. 이 당시 까르푸의 경영기조는 ‘외연 확장보다 내실을 기하자’는 쪽에 맞춰졌다. 인력 감원, 비용 절감 등이 뒤따랐다. IMF를 거치며 땅값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상황에 이마트가 전국적인 다점포망 구축에 나섰고, 99년 삼성과 영국의 최대 유통기업 테스코가 손을 맞잡고 홈플러스를 합작 설립하는가 하면, 백화점 업태가 성장의 한계를 노정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할인점 진출을 모색하던 롯데가 매장 오픈에 열을 올리던 시점에 유독 까르푸만이 투자를 멈춘 셈이다.
“할인점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점효과입니다. 좋은 장소에, 가장 먼저, 많이 지어야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00년도부터 까르푸 주가가 곤두박질치기 시작하면서, 2001년 그룹의 자금 사정이 굉장히 좋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까르푸는 이때 출점을 포기하면서 타 업체에 좋은 시장을 다 뺏겨버렸습니다.” 한국까르푸노조 김경욱 위원장은 “다점포망 구축에 실패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키지 못한 점이 까르푸가 한국을 떠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고 지적했다. 위에 열거한 이유들로 인해 까르푸는 결국 10년을 못 채우고 한국 철수를 결정했다. 까르푸는 한국 철수 결정으로 인해 자존심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게 됐지만, 시장 지배력과 성장성을 갖춘 제3의 시장을 찾는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까르푸는 글로벌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이라는 전략목표 아래 중국에만 20개의 매장을 추가 개설한다는 목표를 밝힌 상태다.
다음편 <까르푸 인수전 공방의 비밀, ‘왜 이랜드인가?’>에서는 한국까르푸의 매각계획 발표부터 이랜드 인수까지의 과정을 되짚어보고, 이랜드가 밝힌 ‘패션프리미엄아울렛’ 전환의 성공가능성을 타진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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