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일 목요일

[조선데스크] 삼성 타도 '선전포고'

송의달 산업부 차장대우
2005년 3월,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소니(Sony) 역사상 처음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로 영입된 하워드 스트링거(Stringer) 회장의 별명은 '좋은 상사'(Mr. Nice Guy)이다. 미국 CBS방송 PD 시절 '방송계의 오스카'인 에미상을 10번이나 받은 그는 붙임성 있는 성격에 유머로 좌중을 사로잡는 매력남(魅力男)이다.

그런 그의 표정에 요즘 웃음기가 사라지고 비장감이 감돌고 있다. 소니의 작년 3분기 매출과 수익이 각각 25%, 95% 급감한 데 이어 2008년도 결산도 14년 만에 대규모 적자를 내는 등 경영에 '빨간불'이 켜진 탓이다.

소니의 추락 원인은 1년 만에 엔화 가치가 50% 가까이 치솟는 초강세(환율 하락)에다 글로벌 경기 침체, 일본 증시 하락 등 여럿이다. 하지만 그가 최대 걸림돌로 꼽는 회사는 따로 있다. 바로 삼성전자이다. 삼성은 연간 1074억달러(약 144조원·지난해 기준) 규모의 세계 TV시장에서 소니를 제치고 2006년부터 3년 연속 1위를 차지, 세계 최고 가전업체이던 소니의 아성(牙城)을 무너뜨린 '주범(主犯)'이다.

전문가들은 "1990년대 초반까지 소니의 컬러TV에 납품하던 하도급업체였던 삼성전자가 10년여 만에 대역전극을 이뤄냈다"고 평가한다. 단적으로 2000년 소니의 시가총액(주식 총수에다 주가를 곱한 것)은 삼성전자의 네배였으나, 2006년에는 삼성전자가 소니의 두배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하워드 회장이 '소니 왕국 재건'을 목표로 '타도 삼성!'의 기치를 내걸고 '터프(tough) 가이'로 변신한 것이다. 작년 가을 독일 베를린 전자제품박람회(IFA)에서 "2010년엔 1위 자리를 되찾겠다"며 대(對)삼성 '선전포고'를 공언한 그의 탈환전은 이미 시작됐다.

2011년까지 신기술 개발에 1조8000억엔(약 27조원) 투자, 브라질·러시아·인도 등 신흥시장 공략 및 현지화, 세계에서 가장 얇은 9.9㎜짜리 LCDTV 출시(작년 12월), 세계최초 OLED(유기발광다이오드)TV 등…. 이달 1일부터는 주바치 료지(中鉢良治) 전자담당 총괄 사장을 상담역으로 퇴진시키고 자신이 사장과 회장을 겸해 경영 전권을 장악했다. 신제품 도입 결정과 시장 대응 속도를 높이기 위해 '합의제'이던 의사결정 방식은 '톱 다운' 방식으로 바꿨다.

'삼성 따라 하기'도 노골화하고 있다. 일본 주간 동양경제(東洋經濟) 최근호가 말한 바로는, 소니는 작년 말 '삼성전자 철저 해부'라는 주제로 'TV 기술포럼'을 여는 것을 필두로 삼성 추월 총력전을 펴고 있다. 내년 3월 말까지 전 세계 직원 1만6000명 해고와 세계 57개 현지 공장 가운데 10%인 5~6개 폐쇄로 연간 25억달러(약 3조3750억원)의 경비를 줄이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도 착수했다.

소니의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올 연말쯤 환율까지 안정되면 소니가 최소한 TV 부문 등에서 삼성전자를 추월해 재역전하는 게 꿈만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물론 현재 삼성전자의 경쟁력은 과거 소니의 전성기를 연상시킬 만큼 강력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30년 1위를 달리던 기업'도 한순간에 몰락할 수 있는 게 시장의 냉혹한 현실이다. 어금니를 꽉 물고 '도전장'을 던진 스트링거 회장의 공세를 삼성이 효과적으로 이겨내려면? 무엇보다 기존 성과에 안주(安住)하거나 리더십 혼란, 조직 관료화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게 급선무이다. 나아가 부단한 혁신으로 새 성장동력을 키우고 삼성 특유의 '삼성다움'을 유지·발전시키는 게 관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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