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심각해지는 취업난으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학교주변을 맴도는 졸업생들은 물론 이수학점이나 졸업자격시험을 포기하고서라도 졸업을 유예하는 학생들까지 늘어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청년구직자의 76.4%가 취업경험자이고 실직 상태인 청년 23만7000명 중 1년 미만 실업자의 37.3%가 시간, 보수 등의 불만으로 인해 자발적 이직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젠 대학이 졸업생 사후관리에 나섰다.
이력서 작성에서 이미지 메이킹, 취업컨설팅 등의 맞춤형 구직교육과 취업에 도움 될 실무 강의 등을 무료로 제공, 미취업자 구제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에 '스펙DB'도= "전공이 비상경계열이라 회계분야는 막연히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쉽게 들을 수 있었고 기초 지식습득에 도움 돼 크게 만족 했습니다"
지난 2월 한국외대를 졸업한 홍모씨(여·28세)는 1월부터 2월까지 4주간 실시된 '한국외대 졸업생 Upgrade Program'의 경영회계실무수업에 참여했다.
처음 듣는 상경계열 수업인데다 딱딱한 회계과목이 어려워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모든 수업을 듣고 나니 오히려 회계에 흥미가 생겨 회계직으로 원서를 넣기도 했다고 밝혔다.
한국외대는 지난 7월부터 이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취업 못한 졸업생들과 이직·실업 등의 이유로 재취업을 고민하는 졸업생들, 학부생뿐 아니라 대학원생까지도 대상이다. 4주 동안 이뤄지는 교육프로그램은 과목별로 30~50명이 정원이고 수강료와 교재비를 포함한 전 비용은 무상이다.
2기까지는 실무영어, 실무일본어, 실무중국어, 경영·회계실무 등의 과목을 주3회 2시간씩 운영했으나 학생들의 건의로 3기부터는 취업정보분석과 입사전략, 경영·회계 등의 실무과정을 추가했다.
2009년 1월 3기 프로그램을 완료한 결과 총 889명이 수강을 신청했다. 프로그램 만족도 조사 결과는 평균 79.8%였다.
학생복지처 경력개발센터 장종육 과장은 "작년은 첫 시도라 미흡한 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율과 만족도가 높아 4기부터는 좀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계획안을 세웠다"며 "3기까지는 외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어학에 치중했지만 4기부터는 실무에 관련된 강의를 추가했으며, 앞으로는 개별 스펙(Specification, 학생 개개인이 취업을 위해 쌓아놓은 이력)도 수치화해서 관리하는 '학생경력관리 데이터베이스(DB)'제도를 2학기부터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외대의 '스펙DB'는 총 1000점 만점으로 기업에서 서류전형 시 중요하게 여기는 10가지 항목으로 구성됐다. ▲학과성적 ▲어학성적 ▲전공관련자격증 ▲사회봉사실적 ▲해외연수실적 ▲수상실적▲인턴근무 경험▲정보화능력▲기타-학교행사 참여 실적 등으로 각각 10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 한국외대는 기업에서 취업예정자 추천 요청 시 학점이 아닌 스펙점수 순서대로 선발할 계획이다.
장 과장은 "학생들이 대학에 온 것은 취업이 궁극적 목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스펙관리 때문에 전공공부가 소홀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으나 우수한 학생을 뽑는 것만큼이나 우수한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도입배경을 설명했다.
◆학사 후 과정, 교내서 인턴= 숙명여대는 학사학위 취득 후 1년 이내 졸업자들을 대상으로 '학사후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학부시절 부족했던 경영학 관련과목(금융, 마케팅, 회계 등)을 재학생과 같이 수강하는 '학습심화과정', 이력서 작성과 면접스킬, 진로상담 등을 교육하는 '맞춤형 진로준비과정', '교내 및 국내외 인턴과정' 등 세 가지로 나눠 무상으로 제공한다. 대학별 졸업생 취업지원 프로그램
교육을 마치면 수료증도 발급한다. 지난 3월 미취업자를 위해 개설한 이 과정에는 전체 졸업생 2087명 중 15%에 해당하는 300명(중복신청 포함) 가량이 참가하고 있다.
학습심화과정을 비롯한 맞춤형 진로준비과정과 교내 인턴과정에도 참여한 임모씨(가명·여·26)는 '학사 후 과정' 신청할 때만 해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인문학 전공이라 생소한 경영학 분야를 혼자서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신청했는데 과목을 모두 수강하고 나니 정확한 정보습득과 분야 선정에 도움 돼 진로가 확고해 졌다"며 "현업에 종사하는 강사들이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수업을 이끌어 이해도 빨랐다"고 했다.
현재 교내에서 인턴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김모씨(여·25)는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인턴은 전공을 고려해 적절한 부서에 배치해줘 도움이 된다"며 "교내에서 인턴을 하기 때문에 학생의 연장선에서 친근하게 느껴져 쉽게 취업공부에 몰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도서관, PC실, 이메일 계정 등 각종 교육시설도 무상으로 제공해줘 인턴이 끝나면 도서관에서 공부할 수 있어 좋다고도 했다.
이와 유사하게 서울대도 졸업자와 실직자를 대상으로 '동반자 사회운동'을 실시하고 있다. 동반자 사회운동의 '경력자 재교육 사업'은 대졸 취업희망자, 미취업자, 실업급여 수혜자, 연구개발 경력 구직자 등 2500명에게 특별연구과정, 취업역량강화과정, 경영능력향상과정, 융합과학기술과정 등 교육을 무료로 실시한다.
또 '경력자 활용사업'은 퇴직한 기업 임직원 1000명을 교수, 강사, 특별연구원으로 초빙해 강의를 맡기거나 그들에게 창업을 위한 공간과 시설을 지원한다. '미경력자 인턴십'을 통해서는 서울대 졸업자 500~1000명이 서울대 산하 연구소와 연구센터 인턴으로 채용될 예정이다.
충남대에서도 UCD(University Career Development)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졸업생 200~250명을 대상으로 개별 경력개발프로그램과 기업직무교육 등 2개 취업실무과정을 3개월씩 운영한다.
◆실제 취업으로 이어지기엔 한계= 대학 취업 프로그램의 문제는 운영기간이 짧아 실제 취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4주에서 길어야 3개월 정도여서 참여하는 학생들도 '맛보기'에 그친다는 의견이다.
또한 올해 처음 실시된 학사후 과정의 경우 아직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관리부서가 산재돼 있어 구체적 상황파악이 힘들고 수업 실시 후 피드백도 소홀했다.
수강대상이 한정돼 있는 것도 문제다. 재학생 취업을 우선으로 여겨 기 졸업생 취업교육은 부수적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따라서 수강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전도 재취업을 위해 학교로 회귀한 자나 학사 후 졸업기간이 1~2년 이상 된 졸업생들은 학교 편의시설을 사용하기도 어렵다.
무역회사를 다니다 지난해 말부터 재취업을 준비하려고 학교도서관을 이용하는 이모씨(여·27세)는 "모교임에도 불구하고 도서관 이용이 까다로워 친한 후배의 학번을 빌리고 있다"며 "취업 프로그램 도입도 좋지만 도서관이용이나 무선인터넷 아이디 발급 등 재취업준비생들도 학교시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지현 기자 gee1024@segye.com
"스펙관리 필수…호감 가는 이미지 만들어야"
한국외국어대 경력개발센터 장종육 과장
지난 11일 한국외국어대학교 경력개발센터에는 비가 오는 날씨였음에도 학생들로 북적였다. 센터 전문취업컨설턴트의 상담을 받으려 사전에 신청한 학생들이다.
금융, 유통, 마케팅 등 취업관련 전 분야에 걸쳐 자기소개서나 이력서 등에 대해 매일 다른 컨설턴트들이 번갈아가며 상담을 한다.
졸업생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한 학생복지처 경력개발센터 장종육(사진) 과장은 현재 졸업생뿐만 아니라 재학생을 위한 취업박람회, 컨설팅상담제, 외국어 면접, 취업동아리 등을 관리하고 있다. 그를 만나 학내에서 느끼는 구직현황에 대해 들어봤다.
-최근 취업 현황은?
많이 줄었다. 지난 3년을 돌이켜 보면 2006년까지는 취업상황이 어렵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전반기에는 인턴 등 비정규직이 많고 하반기에 정규직을 뽑는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 갑작스럽게 찾아온 금융위기로 인해 기업의 상반기 채용계획이 대폭 수정됐고 규모도 1/10가량으로 줄었다.
작년 채용계획이 있는 회사를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취업박람회를 열었는데 참여를 취소한 업체가 많았다. 외대는 다른 대학과 달리 인문계만 있기 때문에 타교에 비해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으나, 수도권과 지방대의 경우 취업률이 심각하다.
-학생들에게도 문제가 있나?
학생들의 눈높이가 가장 문제다. 300명 정도의 직원을 보유한 중견기업의 경우 학생을 추천받고자 직접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언어만 되면 추천해 달라는 기업도 있다. 그런데 가려는 학생이 없다. 학생들이 대기업에 대한 헛된 꿈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매년 다수의 인원을 채용하는 것은 적응해서 오래 있는 사람보다 나가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주지시켜도 학생들의 눈높이는 잘 변하지 않는다. 취업 재수를 하더라도 더 좋은 곳에 가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눈높이를 낮추면 갈 곳은 많다.
-어떤 요소가 취업을 좌우하는가?
삼성의 SAT나 대다수 기업의 필기전형격인 인·적성검사도 공부가 필요하다. 인성 테스트 결과가 사실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평상시 생각만으로 검사하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지 관리도 중요하다. 면접관들이 두 세 마디 물어본 것으로 취업의 당락이 좌우된다고 착각해선 안된다. 문을 여는 순간 면접 대상자의 걸음걸이와 자세, 눈초리, 눈매부터 시작해 대답하는 톤과 시선처리, 입모양 등에서 합격의 50~60%가 결정된다. 한두 달 거울을 보며 5분~10분 자기소개 하는 모습을 점검하고 밝고 긍정적으로 보이는 표정을 찾으면 된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나?
2~3학년 때 진로를 설정한 상태에서 스펙관리를 해야 한다. 학생 자신도 변화가 필요하다. 어려운 시기에도 준비된 학생들은 취업한다. 해마다 5월(취업 후 3~5개월이 지난 시기)이면 취업자들이 이직을 위해 많이 나온다. 조건만 보고 갔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다.
대학에서 실시하는 적성검사를 꾸준히 받아 본인의 성향을 빨리 파악하는 것이 좋다. 또한 저학년 때부터 취업박람회나 설명회를 수시로 참여하길 바란다. 이런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취업에 접근하는 자세가 다르다. 눈과 귀로 확인한 것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설정하기 때문이다.
전지현 기자@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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