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일 월요일

[꿈을 응원합니다!] "하루 한 시간 자며 공부… 과학자 꿈 놓지 않았죠"

미시간대 대학원 장학생 이윤의씨

"꿈은 포기하지 않으면 이뤄진다."

세계 최고의 천체 물리학자를 꿈꾸는 이윤의(23)씨의 믿음이다. 그녀는 고교 시절, 어려운 형편에도 교환학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딸이 꿈을 마음껏 펼치길 바란 어머니 안기숙(51)씨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이었다. 방학이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야 하는 고된 생활 끝에 윤의씨는 미국 미시간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전액 장학금과 월 2100달러의 연구비 지원이라는 파격적인 혜택까지 받았다.

중학교 수학여행에서 과학자 꿈 찾아

윤의씨는 어릴 때부터 과학에 흥미가 많았다. 초·중학교 때도 학교 실험실에서 기자재 관리를 맡아 살다시피 했다. 물리에 관심이 많았고, 공상과학 영화에 심취했다. "영화에서 본 'NASA'(미 항공우주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천체물리학자의 꿈을 가진 것은 중학교 수학여행이 계기가 됐다.

"강원도 평창으로 수학여행을 갔어요. 당시 여배우 조디 포스터가 출연한 영화 '콘택트'를 보고 감동받아 별과 우주에 관심이 많았지요. 망원경으로 영화에서 봤던 '베가'성을 봤을 때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받았죠."

'NASA 연구 디렉터'의 꿈을 키우는 이윤의씨와 어머니 안기숙씨./이구희 기자 poto92@chosun.com

윤의씨는 유학을 가기 전까지 수학·과학은 물론 영어학원조차 다닌 적이 없다. 그런데도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영어 때문에 고생한 적이 없을 만큼 영어를 잘했다. 비결은 '생활 속 영어'. 안씨는 일찍부터 영어테이프를 들려주고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율동을 따라 하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하게 했다. 좋아하는 가족영화를 몇 번씩 돌려 봐 아이들이 영화 대사를 줄줄 외울 정도였다. 1990년대 말, 컴퓨터 통신이 시작됐을 때는 사전을 앞에 펴놓고 외국인과 채팅하며 실력을 길렀다.

어려운 조건에도 결코 꿈 잃지 않아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미국유학을 결심했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덜 드는 교환학생 제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혼 후 학습지 교사를 하며 혼자 힘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상황이었기에 도저히 유학을 보낼 형편이 아니었지만, 안씨는 결단을 내렸다. "아이 성격도 소극적인데 한국에 있으면 어두운 환경 때문에 자신의 재능과 꿈을 펴지 못할 것 같았다"고 했다.

고1 2학기에 미국으로 떠난 윤의씨는 10학년이 아닌 11학년으로 미국 고교에 들어갔다. 12학년에는 상위권 학생들만 들어가는 '아너 소사이어티'에 들어갈 정도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대학 입시에서도 미시간대, 코넬대 등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좋아하는 천체물리학을 전공하기 위해 미시간대를 택했지만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 끝내 입학을 취소했다. 대신 전액장학금을 약속한 위노나주립대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로 악착같이 학비를 벌었다. 그리고 일년 뒤 원하던 미시간대 편입 시험을 치러 합격했다.

"미시간대에 들어간 뒤 잠을 하루에 한 시간씩 자면서 공부했어요. 천체물리학과는 학과 성적은 물론 연구 참여 실적까지 쌓아야 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는데, 저는 방학 중에 학비를 버느라 참여를 못 하니 학기 중에 최선을 다했죠. "

대학 졸업 뒤 윤의씨는 귀국해 이화여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미시간대 대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방학 중 연구 참여 실적이 부족했다.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연구를 계속한 그녀는 올해 초 미시간대 대학원 합격통보를 받았다. 전액 장학금에 월 2100달러의 연구비까지 지원받게 됐다. 대학원에서 화성 연구를 시작할 예정인 윤의씨는 'NASA 연구 디렉터'라는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 어머니는 항상 '돈이 없어도 괜찮다. 어떤 일이 주어져도 열심히 공부하고 능력을 갖추면 된다. 지금은 어렵지만, 이것은 과정일 뿐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제 꿈을 이룬 뒤에는 저처럼 어렵게 공부하는 후배들을 돕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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