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에서 승부가 갈린다. '초콜릿폰''가로본능폰'처럼 디자인의 특징을 따서 제품의 이름을 짓기도 한다. 이에 따라 산업 디자이너에 대한 대우가 달라졌다.
LG전자 김진 디자인 담당 상무는 "몇 년 전까지도 기능에 디자인을 맞췄는데 요즘은 디자인에 기능을 맞출 정도로 디자이너의 목소리가 세졌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유능한 디자이너를 뽑는 데 팔을 걷었다. 해외 인재까지 데려온다. 전자제품 디자이너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 직급보다 능력 =삼성전자 김백기(31)씨는 입사 4년차 디자이너다. 길지 않은 경력에도 그의 수상 경력은 화려하다. 팀원들과 함께 PDP TV 'SPD-50P5' 등을 만들어 지난해와 올해'iF''레드닷' 등 세계적인 디자인상을 휩쓸었다. 그는 "디자이너는 디자인으로 말할 뿐 직급과 경력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LG전자 김현빈(25)씨가 신입사원 연수 시절 그린 휴대전화 디자인은 바로 제품 디자인에 반영됐다. 이 휴대전화는 지난해 8월 이탈리아에서 모두 50만 대가 팔렸다. 그는 "능력이 중요한 조직이라지만 연수생이 그린 디자인이 바로 상품화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산업 디자이너의 근무 방식은 일반 직원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삐죽삐죽 머리를 세우거나 헐렁한 청바지,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출근하는 직원들도 상당수다. 출퇴근 시간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위계질서를 크게 강조하지도 않는다.
LG전자 김희중 인사담당 부장은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성과 위주로 조직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업무량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삼성전자 김시내(27)씨는 "툭하면 밤샘을 하고 주말에도 회사에 자주 나온다"며 "창의적인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 인턴을 노려라 =삼성.LG 등은 대학생 후원 프로그램과 인턴제를 운영하고 있다. '될성 부른 떡잎'을 미리 확보하자는 취지로 만든 제도다. 삼성전자는 매년 대학생 20~25명을 선발해 '디자인
멤버십 회원'을 구성한다. 회원들은 회사에서 마련한 사무실에서 관심 있는 분야의 디자인 작업을 할 수 있다. 이들이 삼성에 입사 지원을 하면 서류.SSAT(삼성직무적성검사) 등을 면제받는다.
이 회사 인사팀 강한주씨는 "상반기에는 멤버십 회원을 대상으로 뽑고 하반기에 일반 지원자를 선발한다"고 말했다. LG전자는 매년 4월 전국 30개 대학에서 우수 학생들을 추천받아 인턴사원으로 채용한다. 이들은 여름방학 동안 2~4주의 인턴 생활을 한다.
삼성과 LG전자는 각각 올해 신입.경력 디자이너를 60~100명 뽑을 계획이다. 채용 과정은 크게 포트폴리오 심사와 면접으로 나뉜다. 포트폴리오 심사는 지원자들이 기존에 자신이 만든 작품을 선보이는 절차다. 평가항목은 ▶창의성▶의사소통 능력▶지원 동기▶전공 능력 등으로 나뉜다. 또 의사 소통 능력이 중요하게 평가된다고 인사담당자들은 말한다.
LG전자 김희중 부장은 "자신의 디자인을 기술.마케팅 담당자에게 설득하는 능력이 중요해 지원자들의 표현 방식이나 어휘 구사 능력을 주의 깊게 살핀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강한주씨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만을 펼치는 지원자들은 탈락시킨다"며 "자유롭게 토론하는 것처럼 자신의 의견을 면접관에게 표현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DESIGNER INTERVIEW
"주말엔 IT기술 과외공부
업무량 생각보다 많아"
LG전자 MC디자인연구소 윤정은
LG전자 MC디자인연구소의 윤정은(26.사진)씨는 지난해 말 입사했다. 홍익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대학 3학년 때부터 전자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결심해 선배들에게 취업 정보를 얻었다.
윤씨는 전 학년 평균 학점이 3.5(4.5점 만점)는 넘어야 한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 학과 공부에 충실했다. 학과 과제를 열심히 하다 보니 자연히 입사 전형에 제출할 작품도 쌓였다. 그가 포트폴리오로 제출한 작품은 ▶자동차▶휴대전화▶모바일카드 등이었다. 토익(TOEIC) 점수는 입사지원 점수(500점)를 넘길 정도였지만 점수를 올리기 위해 더 공부하지 않았다고 한다. 윤씨는 "면접관들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한 것이 좋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며 "면접 질문은 디자인에 대한 내 의견을 묻는 것이 많았다"고 말했다. 1월부터 근무를 시작한 윤씨는 업무량이 예상보다 많아 놀랐다고 한다. "밤 12시를 넘기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또 휴대전화를 디자인하면서 전자공학에 대한 식견이 달린다고 생각해 주말마다 휴대전화 기술을 공부했다. 자신의 디자인을 설득하려면 기술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직접 디자인한 휴대전화가 해외로 수출되던 날의 기쁨을 잊을 수 없다"며 "창작은 고달픈 과정이지만 '대박 제품'을 내겠다는 꿈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DESIGNER Q&A
Q:휴대전화를 디자인하고 싶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의 디자인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나.
A:삼성.LG 등은 분야를 구분하지 않고 뽑는다. 신입사원은 입사 후 휴대전화.TV 등 희망 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꼭 원하는 제품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한번 담당 분야가 정해지면 이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회사는 제품별로 전문 디자이너를 키우려 한다.
Q:연봉은 얼마나 되나.
A:디자이너는 다른 직종에 비해 많이 받는 편이다. 신입 디자이너 초봉은 3000만원대 초반이다.
Q:디자이너도 해외근무 기회가 있나.
A:주요 업체들은 유럽 등에 디자인연구소를 두고 있어 해외에서 일할 기회가 적지 않다. 해외연수도 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입사 8~15년차 디자이너가 6개월~1년 해외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디자인 파워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Q:디자인 전공자만 디자이너가 될 수 있나.
A:그렇지는 않다. 실제 삼성.LG전자 디자인연구소에는 공학.심리학.미술 계열 전공자가 일하고 있다. 전체 디자이너의 5~10%가 비전공자다. 이들은 대학원 등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고 입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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